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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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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 며느리
조회|259
작성자 |이병만
작성일 |2017.02.10

밖에 바람 불고 날이 드세다.

그런데 익히 듣던 새소리가 들린다.

나가 보니 작년에 우리 뜰에 살던 새다.

저 놈이 봄이 온줄 알고 벌써 찾아온 거 같다.

봄보다 새가 먼저 왔다,


시골집에서 포항까지 네시간이 더 걸렸다.

하도 부모님께서 보채셔서 아들네집을 찾아가는 중이다.

오늘 저녁은 아들네집에서 묵으려한다.


구순이 넘은 분들은 기대가 크신 모양이다.

어찌 사는지 손주 며느리는 살림은 잘 하는지 궁금하시다.

도착해서 조그만 아파트에서 한 시간여를 기다리니 둘이서 뭘 사가지고 들어 온다.

먼저 내가 냉장고 부엌을 살펴봤더니 별게 없지만 깔끔했다.


큰 절을 올리고 상을 차려 참가자미회를 안주로 식사겸 술자리가 마련되었다.

말하는 품새나 몸가짐이 침착하고 예의가 반듯해  부모님들이 좋아하시는 눈치다.

술을 좋아하는 집안내력으로 할아버지 아들 손주의 삼대 술판이 점점 화기애애해지는 중에

어먼님은 손주 며느리를 조용히 손짓하여 부르시더니 보따리를 여신다.

금열쇠 목거리 반지 팔찌,그동안 모아 두셨던 금붙이를 전부 주시려나 보다.

자신이 끼고 있던 금반지 두개도 뽑으시고 목걸이도 푸신다.

그리곤 아번님 손가락에 반지도 뽑으려 드시길래 내가 극구 말려서 그 반지는 살렸다.


그렇다.

이 번 방문은 손주네가 보고프기도 했지만 뭔가를 죽기전에 남겨 주려고 작심하고

오신 거였다.

아번님은 손주네 검소한 살림살이를 칭찬하시며 평소 말씀하고 싶었던 바를 손주한테

실컷 설교하신다. 내가 나서서 간신히 줄이시고 늘 즐기시는 약주를  좀 과하게

드시다가 어먼님한테 한 소리 들으셨다.


나도 아들한테 술힘을 빌려 한 마디했다.

별로 경제적 도움도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아들이 즉답했다.  그동안 키워주고 공부시켜주신 것만도 고맙다고.

순간 울컥 눈물이 솟았다. 고맙고 대견스러웠다.

학교 다닐땐 방탕하고 돈 좀 쓰던 놈이 급변해서 구두쇠가 되었다.


아침에 둘이 조반으로 끓여준 된장찌게와 잡채를 얻어 먹고 출근하는 애들과 함께

손주네집을 나왔다. 내게 준 용돈은 슬며시 식탁 위에 놓아 두었다..

아번님은 뭐가 그리 좋으신지 어먼님이 말리는데도 흥겹게 노랫가락을 뽑으신다.

손주 내외가 적잖이 맘에 와 닿으신 모양이다.

나중에 틀림없이 부자가 될거란다.


두분은 이번에 뭔가를 예견하시고 손주네를 찾아 가신거 같다.

지상의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거,뭔가 생각하시는 바를 전하고 싶은셨던 거,

별거 아니지만 이제 자신들에게 필요 없을 걸 주고 싶은 거였다.

검소하게 예의 바르게 착실히 사는 손주 내외, 특히 착하고 이쁜 손주 며느리에게

홀딱 반하셔서 기분이 여간 좋으신게 아니셨다.

조부님하고 같이 살았다더니 노인분 대접하는 게 익숙해 보였다.


새벽에 목이 타서 물 한잔 마시고 주무시는 어먼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검바위가 가득 피고 주름이 늘어주신 어머니, 열 아홉에 시집와 40 여년을 시부모님 봉양하시고 본인은 한달도 자식 손주하고 같이 살아보지 못한게 한이신 분, 일 많은 시골집 맡며느리로 다섯 자식 키우고 공부시킨다고 약한 체구에  급한 성격의 남편 곁에서 한평생 사시느라고 고생하신 시골 촌부 우리 어먼님.

가만히 어먼님 손을  쥐어 본다.

참깻단처럼 바짝 야윈 가늘란 손마디에 희미한  맥만 흐른다.

별안간 깔깔깔 웃으신다. 깜짝 놀랐다.

꿈속에서 증손주 재롱 떠는 걸 보셨나 그 꿈 풍경이 궁금하다. 


이젠 걸음 걸이 조차 불편하신 우리 어먼님, 가엾어라.

그러나 두분이 보여주신 희생과 노고는 내게 거룩하셨다.

사시는 날까지 몸 덜 불편하시게 사시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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